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리스 스토리 (문단 편집) == 성룡의 대표작 == 성룡은 1970년대 후반 [[취권]] 등의 성공으로 홍콩의 스타가 되었고, 이를 발판삼아 1980년 초에 헐리웃에 잠깐 진출하였지만[* 후술할 ‘배틀 크리크’와 ‘캐논볼’, ‘프로텍터’ 등의 영화들], 흥행에서는 쓴잔을 맛봤다. 헐리웃에서 어디까지나 성룡은 이방인이었고, 워낙에 완벽주의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중시하는 그에게 헐리웃의 액션 영화의 제작 과정은 너무나도 꼰대같고 답답한 방식이었기 때문.[*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홍번구의 박스오피스 1위 등극 및 [[러시 아워(영화)|러시 아워]] 흥행 대박으로 이 당시 당한 서러움을 갚는다.] 즉, 성룡은 특히 이 시절 미국 감독 제임스 글릭켄하우스가 감독, 공동 각본을 맡고 ‘배틀크리크’에 이어 두번째로 야심차게 미국 진출을 위하여 제작한 프로텍터의 미국 편집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감독과 충돌이 자주 있었고 결국 본인이 자비로 배우들을 다시 홍콩으로 불러 추가촬영과 재편집한 홍콩 및 아시아 버젼의 위룡맹탐(威龍猛探)을 만들게 된다. 홍콩 및 아시아판은 미국판보다 2개월 가량 먼저 개봉했다고 한다. 이후 프로텍터의 실패를 교훈삼아 '''"진짜 경찰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척추 골절, 무릎 부상, 고관절 탈구 등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프로젝트 A]]와 함께 성룡이 주연 및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성룡의 작품중에서도 프로젝트 A와 함께 가장 명작으로 꼽힌다. 이후 성룡은 노화와 더불어 직접 스턴트를 줄이게 되며, 감독 겸업도 자제하게 된다.[* 물론 감독 겸업을 자제한 것은 작업 부담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작사와의 마찰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완벽주의자인 성룡은 배경 세트, 소품 하나하나도 당시 평균적인 홍콩 영화와 비교도 안되는 예산을 썼고, 액션씬 하나도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찍어대니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성룡이 감독을 맡으면 제작사는 큰 수익을 거두지 못해 항상 불만이었다. 폴리스 스토리 3와 취권 2도 원래는 성룡 본인이 만들고 싶어했지만 결국 다른 감독들이 맡게 되었다. 다만, 성룡은 연출에 개입해서 영화에 많은 입김을 불어넣었고 폴리스 스토리 3 감독인 당계례와 취권 2 감독인 유가량은 모두 성룡과의 작업 경험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취권 2는 감독이었던 유가량이 중도에 그만두면서 성룡이 마무리하게 된다. 이외에도 성룡이 감독이 아닌데 성룡 작품이라고 표기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 감독과 성룡의 불화로 감독이 하차하여 성룡이 나머지 작업을 한 영화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